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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수요 둔화 속 고부가가치 산업 전환의 시급성(저성장 시대에 ‘수량 확대’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이유)

by 단대디 이코노믹스 2025. 5. 13.

글로벌 수요 둔화 속 고부가가치 산업 전환의 시급성

 

한국 경제는 더 이상 예전처럼 ‘많이 팔면 해결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글로벌 수요는 정체되거나 감소하고 있고, 국제 규제는 까다로워지고 있으며, 기술 격차는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오늘은 물량이 아니라 가치 중심의 고부가가치 산업 전환의 시급성과 방향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글로벌 수요의 구조적 둔화,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흐름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 경제는 ‘팽창’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중국의 WTO 가입, 유럽연합의 확대, 신흥국의 성장 등으로 인해 글로벌 수요는 연평균 4~5%씩 성장하며 한국을 포함한 수출국들에게 황금기를 선사했다. 특히 대량 생산·저가 수출 전략은 단순하고도 확실한 성공 공식이었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부터 이 기조는 점차 변화의 조짐을 보였고, 2020년 이후 팬데믹, 지정학적 리스크, 탈세계화 흐름, 금리 상승기 등이 맞물리며 전 세계적으로 ‘수요의 구조적 둔화’가 본격화되었다. IMF는 2025년 이후 세계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3% 이하로 보고 있으며, 이는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저성장 국면에 들어섰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수출산업에도 치명적인 도전을 던지고 있다. 과거처럼 단가를 낮춰 물량을 늘리면 성장하던 방식이 이제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수출 시장의 파이는 정체되거나 줄어드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이 확보할 수 있는 몫 자체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수량의 시대’는 끝났다: 수출전략의 패러다임 전환 필요

한국은 제조업 중심의 수출 대국으로 성장해 왔다. 하지만 이 성공 방정식은 ‘물량 중심 사고’에 지나치게 의존해온 측면이 있다. 특히 철강, 조선, 석유화학 등은 생산량 확대 → 가격 인하 → 수출 증가 → 고용 창출이라는 선순환을 기반으로 산업 정책이 설계되어 왔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러한 방식은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

 

① 시장 포화와 가격 경쟁의 덫
대표적인 예가 디스플레이, 가전, 석유화학이다. 중국의 대규모 설비 투자와 공급 과잉으로 인해 가격 하락 압박이 심화되고 있으며, 고급 제품조차 '중저가 대체재'의 경쟁에 직면해 있다. 물량을 아무리 늘려도 총수익은 오히려 감소할 수 있는 구조다.

 

② 환경 규제와 탄소배출 부담
글로벌 ESG 규제 강화로 인해 저부가가치·고탄소 산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대표적으로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세(CBAM)는 철강, 알루미늄, 비료 등 한국 수출 주력 품목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 즉, 이제는 생산량보다 탄소 효율성과 제품 질이 더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된 셈이다.

 

③ 공급망 재편과 지정학 리스크
수출 시장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무역 분쟁, 중동 긴장 고조 등 예측 불가능한 리스크가 잦아지며, 물량 중심 전략은 큰 외부 충격에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이러한 요인들은 수출이 단순히 ‘많이 만드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제는 ‘무엇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전략적 전환이 필요하다.

 

고부가가치 산업 전환: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한국 산업이 직면한 과제는 명확하다. 글로벌 수요가 줄어들고 가격 경쟁이 심화되는 지금, ‘적게 팔아도 많이 버는 구조’로의 전환, 즉 고부가가치화가 필수라는 점이다. 이 전략은 단순한 기술 고도화만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와 정책 패러다임까지 바꿔야 가능한 과제다.

 

① 산업 구조 다변화와 기술 중심 전환
한국은 여전히 일부 주력 산업(반도체, 조선, 자동차)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향이 필요하다.

  • 첨단 부품·소재 독립: 일본 수출규제 이후 소재 국산화에 대한 필요성이 부각되었고, 이는 단기 과제가 아니라 장기 성장 전략이어야 한다.
  • 플랫폼·서비스화: 제조업 중심에서 벗어나, 제품+서비스 결합 모델(예: 스마트팩토리, SaaS형 장비 솔루션 등)로 수익 구조를 다변화해야 한다.
  • AI와 융합 산업: 전통 제조에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기술을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산업군을 키워야 한다.

② 고부가가치 인재 생태계 구축
고부가가치 산업 전환의 핵심은 사람과 지식이다. 고급 기술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기술 혁신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한국은 STEM(이공계) 분야의 인력 유출, 중소기업 기피 현상 등으로 인재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

  • 산학 연계 강화: 대학-기업 간 기술 공동개발 및 현장 인턴십 활성화
  • 전문인력 유치 정책: 해외 박사급 인력 유치, 국내 연구자의 처우 개선
  • 기술 창업 생태계 확산: 중소·벤처 기업의 기술력이 시장에서 빠르게 확산될 수 있는 구조 마련

③ 국가 전략산업 재정의와 정책의 연속성
국가 차원의 산업 전략도 ‘규모 중심’에서 ‘가치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이 요구된다.

  • 미래 성장 중심 산업 지정: 기존 주력산업 외에도 바이오, 우주항공, 수소에너지 등 차세대 산업에 대한 전략적 투자가 필요
  • 지속 가능한 정책 프레임: 정권 변화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장기적 산업 육성 로드맵 수립
  • 수출 지원 전략의 질적 전환: 단순 판로 개척이 아니라 고부가가치 제품의 글로벌 브랜드화, 인증 지원, 전략 시장 특화 등 세밀한 지원체계 필요

‘수량의 시대’에서 ‘가치의 시대’로

이제 ‘가치의 시대’가 도래했다.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그 전환을 위해 필요한 것은 기술도, 정책도, 자본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인식의 변화이다. 수량의 환상에서 벗어나, 품질과 가치 중심으로 전략을 재편하는 것이 글로벌 시장 경쟁력 회복을 위한 방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