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e in Korea' 모델의 한계: 제조 기반 성장의 구조적 피로감
한국 경제는 지난 수십 년간 제조업과 수출 중심의 성장 전략을 통해 눈부신 성과를 이뤄냈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디스플레이, 조선, 배터리 등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으며 ‘Made in Korea’라는 국가 브랜드를 강화시켜 왔다. 그러나 이 성공 모델이 지속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번에는 "수출 중심 국가의 구조적 위기: 'Made in Korea'의 글로벌 경쟁력 재진단" 시리즈 열 번째이자 마지막 편으로서, 향후 한국 경제 패러다임 변화와 글로벌 경쟁력 회복을 위한 방향을 생각해 본다.
✅ 글로벌 경기 둔화와 공급과잉
세계 경제는 고성장 국면에서 벗어나 장기 저성장 기조로 접어들고 있다. 동시에 탈세계화, 보호무역주의 확산, 중국의 수요 둔화 등으로 인해 한국의 주요 수출 시장이 위축되고 있으며, 기존 산업의 공급과잉 문제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는 수출 주도 성장의 한계점에 도달했음을 시사한다.
✅ 인건비 상승과 생산 거점 이전
한국의 노동 비용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으며, 제조업의 해외 이전 추세도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제조업 기반만으로는 일자리 창출이나 부가가치 유지를 보장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쟁력은 약화되고, 대기업 중심의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다.
✅ 기술 경쟁력의 정체
과거에는 선진국 기술을 빠르게 모방하고 내재화하는 전략이 유효했지만, 이제는 혁신 주도형 산업 전환 없이는 글로벌 경쟁력 유지가 어렵다. 제조업 분야에서의 기술 격차가 줄어들면서, 한국은 중국·동남아시아 국가들과 가격 경쟁에서 점점 밀리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Created in Korea'의 가능성: 혁신과 콘텐츠 중심 경제의 부상
'Made in Korea'에서 'Created in Korea'로의 전환은 단순한 용어의 변화가 아니라, 경제 성장의 패러다임 자체를 전환하려는 움직임이다. 즉, 물리적 제품 생산을 넘어, 기획력·창의성·브랜드력 중심의 창조경제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 콘텐츠 산업의 글로벌 확장
K-pop, K-드라마, 웹툰, 게임 등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한국의 브랜드 파워를 보여주는 대표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이들 콘텐츠 산업은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으로도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플랫폼 기반 경제로의 전환에도 부합한다.
- BTS, 블랙핑크, 넷플릭스 오리지널 K-드라마의 성공은 브랜드의 '정서적 가치'가 수출 가능한 자산이 될 수 있음을 입증
- ‘지식재산(IP)’을 중심으로 파생 상품과 협업 수익 창출 가능
- K콘텐츠는 한국어, 한국 문화의 글로벌 확산이라는 파급 효과도 동반
✅ 혁신 스타트업 생태계의 성장
한국은 최근 몇 년간 유니콘 기업 수가 빠르게 증가하며, 기술 기반 스타트업이 경제의 성장축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AI, 바이오, 핀테크, 모빌리티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는 새로운 ‘Created in Korea’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 쿠팡, 토스, 무신사, 마켓컬리 등 디지털 유니콘의 성장은 국내 소비 트렌드의 변화를 반영
- 민관 협력 스타트업 지원 정책 확대: 팁스 프로그램, 창업진흥원, 청년창업사관학교 등
- 여전히 규제와 자본 접근성의 장벽이 있으나, 성장 잠재력은 높음
✅ 브랜딩과 디자인 중심의 부가가치 창출
‘K’ 브랜드는 이제 단순한 국가 표기 이상의 감성적·문화적 브랜드 자산이 되었다. 디자인, UX, 브랜드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한 비물질적 경쟁력이 중요해지면서, 한국 기업들도 이에 맞춘 전략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 삼성전자는 기술 중심에서 사용자 경험(UX) 중심으로 브랜드 전략을 재편
- 중소기업들도 자체 브랜드 개발과 글로벌 크라우드펀딩, SNS 마케팅으로 직접 소비자와 연결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과제와 정책 제안
'Created in Korea' 중심 경제로의 전환은 단순히 한두 산업의 성공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제도, 인프라, 문화, 교육, 자본 등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구조 전환이 필요하며, 정부와 기업,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 변화가 요구된다.
✅ ① 교육·인재 생태계의 혁신
창의와 혁신은 결국 사람의 역량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 체계는 여전히 수동적 학습과 시험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창의적 인재 양성에 한계를 보인다.
- 정형화된 입시 중심 교육 → 프로젝트 기반 학습, 융합 교육 확대 필요
- AI, 디지털, 문화 콘텐츠 등 미래 산업 인력 양성을 위한 커리큘럼 개편
- 글로벌 감각을 가진 창업가형 인재 양성 강화
✅ ② 규제 환경과 자본 접근성 개선
혁신 산업은 빠르게 변화하지만, 한국의 규제 체계는 여전히 기득권 보호 중심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신산업에 대한 ‘선허용-후규제’ 원칙을 명확히 하고, 자본시장과의 연결성도 강화해야 한다.
- 스타트업이 상장 이전에 대규모 자본을 확보할 수 있도록 벤처펀드 활성화
- 데이터, 플랫폼, AI 등 신산업 분야의 법적 불확실성 제거
- 대기업 중심의 시장 진입 장벽 완화 및 공정한 경쟁환경 조성
✅ ③ 경제 전략의 구조적 전환
국가 경제 전략 자체를 ‘수출 주도 제조업’에서 ‘혁신 주도 창조경제’로 구조적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정책적 대전환이 필요하다:
- 기존 제조업 중심 수출 인프라 → 디지털, 콘텐츠, 지식재산 기반 수출 플랫폼으로 확장
- 국책 R&D 예산의 일부를 문화기술(CT), 디자인, 창작 기반 산업으로 전환
- ‘Made in Korea’에서 ‘Designed, Invented, Created in Korea’로 국가 브랜딩 전략 변경
새로운 한국 경제 모델을 위한 질문
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극적인 경제 성장을 이룬 국가 중 하나다. 그러나 기존의 ‘제조-수출’ 공식은 더 이상 만능 해법이 아니다. 전 세계가 기술·콘텐츠·서비스 중심의 경제로 이동하는 가운데, 한국 역시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한다.
‘Made in Korea’가 산업화 시대의 표어였다면, ‘Created in Korea’는 창조경제 시대의 선언이 되어야 한다. 창의와 감성, 브랜드와 경험이 중심이 되는 경제 구조 전환이 가능할 때, 한국 경제는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다. 이제 혁신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 제도, 문화, 그리고 의지가 구축되고 발현되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