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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경쟁력의 뿌리: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취약성과 돌파구(일본 수출 규제 이후 소부장 자립 성과와 한계)

by 단대디 이코노믹스 2025. 5. 14.

제조업 경쟁력의 뿌리: 소재·부품·장비 산업

'강한 제조업'의 이면: 소부장의 구조적 취약성

 

한국 제조업은 세계적으로도 경쟁력 있는 산업군으로 평가받는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배터리, 조선 등 세계 시장에서 선도적인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는 분야가 여럿 존재한다. 그러나 이 경쟁력의 바탕이 되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기반 위에 놓여 있으며, 글로벌 공급망 변화와 지정학적 리스크 속에서 그 약점이 점점 더 부각되고 있다. 오늘은 일본 수출 규제 이후 한국 소부장 산업의 현주소와 발전 방향을 살펴본다.

 

✅ 완성품 중심의 산업 구조

한국 산업 구조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완제품’에 집중되어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 등 대표 기업들은 완성품 수출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해왔다. 하지만 이들 기업조차 핵심 부품과 장비는 일본·독일·미국 등 외국 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구조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유발한다:

  • 핵심 원천 기술 확보 실패
  • 글로벌 공급망 충격 시 생산 차질 발생
  • 부가가치 창출의 상당 부분을 해외 기업이 차지

✅ 2019년 일본 수출 규제의 충격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는 2019년 일본의 소재 수출 규제였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수적인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의 대일 수출을 제한했다.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생산에 직격탄이 될 뻔했으며, 이 사태를 계기로 국가 차원의 소부장 산업 강화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자립 노력과 성과: 진짜 자립인가, ‘조립형 자립’인가?

일본 수출 규제 이후, 정부와 기업은 소부장 산업의 자립화를 위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에 따라 일부 분야에서는 의미 있는 성과가 있었지만, 진정한 기술 독립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많다.

 

✅ 단기적 성과와 대체재 확보

정부는 소부장 산업을 100대 전략 품목으로 지정하고, 국산화와 다변화 전략을 추진했다. 그 결과:

  • 불화수소의 경우 국산 생산 비중이 2020년 기준 40% 이상으로 증가
  • 포토레지스트는 벨기에 등 제3국 수입선 다변화를 통해 안정적 공급 확보
  • 일부 반도체 공정용 장비는 국내 중소기업이 국산 대체에 성공

이러한 결과는 공급망 안정성과 기술 의존도 축소 측면에서 중요한 진전이다. 특히 불화수소 국산화는 기업-정부-연구소 협업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근본적 한계: 원천 기술 부족과 글로벌 경쟁력 미흡

그러나 이러한 성과는 대부분 단기적·전략적 대응 성격이 강하며, 핵심 원천 기술에 대한 확보는 여전히 미비하다. 실제로:

  • 국산 제품이 들어오긴 했지만, 고순도 제품은 여전히 일본산 의존
  • 국산 장비의 경우 안정성, 정밀도 면에서 글로벌 톱티어에 비해 격차 존재
  • 공정 핵심기술은 여전히 외국 기업이 IP(지적재산권)를 보유

즉, “국산화”는 어느 정도 진전되었지만, 기술력 기반의 ‘진짜 자립’은 여전히 요원하다는 평가가 많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을 ‘조립형 자립’이라고 부르며, 부품을 끼워 맞추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한다.

 

기술 자립의 조건과 산업 생태계 전환 전략

소부장 산업은 단기간 내 완성되기 어려운, 장기적 안목의 기술 축적과 생태계 형성이 필수인 분야다. 완제품 기업만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으며, 전문 중소기업, 대학, 공공연구기관, 정부 정책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

 

✅ ① 정부의 역할: 생태계 구축 vs 단기지원 탈피

현재 정부의 지원 정책은 일부 성과가 있었지만, 많은 경우 성과 지향의 단기 프로젝트 중심이다. 이제는 다음과 같은 방향 전환이 요구된다:

  • 장기 국책 R&D: 최소 10년 단위의 중장기 원천기술 개발 투자
  • 기술 인재 육성: 박사급 연구자 중심의 소부장 전문 인력 트랙 구축
  • 공공연구소-민간기업 협업 강화: 기술 이전 및 공동 개발 체계 확대

특히, 연구개발 인프라에 대한 선제적 투자는 소재·장비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다.

 

✅ ② 대기업의 책임과 상생구조 정착

한국 산업에서 대기업은 완성품 중심으로 수익을 창출해왔다. 그러나 소부장 자립을 위해서는 대기업이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과의 상생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면:

  • 공동 기술 개발 및 테스트베드 제공
  • 공급계약 보장 및 지속적 거래
  • 지분 투자 또는 전략적 제휴

삼성전자나 현대차가 자사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협력업체의 기술력을 공동 브랜딩하는 사례가 늘어나야 한다.

 

✅ ③ 글로벌 전략: 수입 대체를 넘어 수출형 소부장 산업으로

소부장 자립은 단순한 수입 대체로 끝나서는 안 된다. 궁극적으로는 한국형 소재·장비를 글로벌 표준으로 만들어, 수출 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 국제 인증·규격 확보
  • 글로벌 전시회·수출 박람회 참여 확대
  • 글로벌 선도 기업과의 공동 연구

현재 일부 소부장 기업은 일본과의 경쟁을 넘어 글로벌 강소기업(GVC)의 형태로 도약을 시도 중이며, 이를 산업 차원에서 확산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제조업의 미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달려 있다

화려한 스마트폰, 첨단 전기차, 초정밀 반도체 뒤에는 보이지 않는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튼튼한 뿌리가 존재한다. 이 뿌리가 약하면, 외부 충격이나 지정학적 리스크에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으며, 한국 산업에 ‘기술 자립’이라는 화두를 강력하게 던져주었다. 이후 수년 간의 자립 노력은 부분적으로 성과를 거두었지만, 진정한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제는 단기 대응을 넘어, 기술 주권 확보와 글로벌 소부장 강국으로의 도약이라는 장기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제조업 강국의 명성을 유지하려면, 이제는 보이지 않는 경쟁력에 투자할 때다.